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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역사이야기

광해군과 소현세자 - 정말 닮은 그들...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강제 퇴위를 당하는 왕이고, 소현세자는 그 인조의 장남으로 지금까지도 독살설이 제기되는 비운의 왕세자입니다. 얼핏 이 둘은 원수지간으로 볼 수도 있는데요. 희한하게도 그들은 공통점이 너무 많습니다. 그 둘이 싸워야했던 적도 비슷했고, 그들이 꿈꾸는 세상 또한 그들의 행보로 볼 때 비슷했습니다. 또한 그 세상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도 역시 비슷한데요. 갑자기 지난번 광해군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소현세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더군요.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고 또 자료를 찾다가 둘을 비교하면서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아버지.... 선조와 인조

 광해군의 아버지는 선조이고 소현세자의 아버지는 인조입니다. 이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정치적 입지가 상당히 좁았다는 것입니다. 선조는 조선의 왕들 중 최초의 방계혈통입니다. 물론 방계혈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핸디캡인지는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런 이야기를 여러 역사관련 사료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봐서는 일단 핸디캡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인조는 당연히 반정을 통해 왕에 추대된 인물이니 역시 핸디캡이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또 하나는 두 사람은 전란을 경험한 왕들입니다. 선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인조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경험했지요.

 

 선조는 수도 한양을 버리고 도망을 간 경험을, 인조는 수도를 버리고 남한산성으로 도망간것보다 더 하게 청의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의 굴욕을 경험합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심리적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는 몰라도, 선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사이에 일어난 이몽학의 난이 끝나면서 김덕령, 곽재우, 홍계남, 최담령 등의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병장들을 죽이거나 사회적으로 격리시켜 버립니다. 또한, 이순신 장군과 같은 관군의 장군들을 끊임없이 의심했다고 합니다. 인조 역시 대책없이 후금과의 관계를 악화시킨 후 정묘호란을 경험하고, 그 후 다시 외교적 실책과 결단력 부족으로 인해 병자호란을 경험하게 되지요.

 

정치적 상황 ! 

선조와 선조의 신하들은 임진왜란이 끝났을때 민심을 진정시킬 방법을 찾아야하는 긴박함에 떠밀리게 됩니다. 

 

우리의 나으리들은 우리를 지키지 못하고 무엇을 했는가? 왜 우리 스스로 우리를 지켜야만 했는가?

 

라는 민중의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물론 쿨~하게 너네 덕분에 우리가 권력을 지키고, 나라를 지켰다. 땡큐~!!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면 지배층의 의무에 너무 무책임하게 들리게 되지요. 아마 이런 대답이 괜찮았을 겁니다.

 

왜는 너무 강했다.
더구나 비겁하게 갑자기 쳐들어왔다.
우리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조선의 영토가 전부 왜의 발 밑에 들어가지 않았는가.
그러나 우리가 군신의 예로 다한
명나라가 우리와의 인연으로 인해 우리를 구해주었다.
정말 명나라에는 고맙지 않은가.

 

실제로 명나라가 얼마나 우리를 도왔는가는 이 순간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지켰다. 조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이 논리가 지배적이었다고 봐야할 겁니다. 그게 이전에 이야기했던 재조지은입니다. 그러니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벽에 막힐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더구나 임진왜란의 충격으로 인해 성리학의 원론적 이론이 더욱 힘을 받게 되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요.

 

두 왕자. 광해군과 소현세자의 경험 ! 

나라를 짊어질 운명의 두 왕자는 조선의 역사에서는 참으로 슬픈 경험을 합니다. 광해군은 이전에 제가 말씀드린데로 거의 전국을 누비며 백성들 속에서 그들을 다독이고 의병으로 일어서도록 독려했었고, 소현세자는 볼모로 청나라에 잡혀가버린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좀 재미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광해군은 20대에 자신이 왕자로 있는 조국 조선의 멸망에 가까운 현실을 보았고, 또 한 영웅인 누르하치라는 사람이 나라를 건국해가면서 황제의 나라 명나라를 멸망에 가깝게 몰아세우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소현세자는 오랑캐의 신하의 나라가 되는 굴욕을 경험하고 적국으로 볼모로 끌려갔습니다. 그것에다 더해서 청나라의 서역토벌과 명나라 정벌전에 장수로서 종군합니다. 광해군과 소현세자는 청나라가 찬란히 피어오르는 초신성과도 같은 존재로 성장하는 과정을 목격하였으며, 조선에 갇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던 사람들과 달리 이 두사람은 그것을 몸으로 채험하고 있었던 겁니다.

 

혈기 왕성하고 뜨거운 가슴을 가진 20대의 왕자... 그것도 본인들 스스로 조국이 위기라고 느낀 왕자... 그 위기를 못본체 할 수도 없고, 또한 그럴 생각도 없이, 맞써 싸워 조국을 재건해야겠다는 열망에 가득한 20대의 두 왕자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모습이 상상이 가는 것입니다.
찬란히 빛나는 저 별이 한때 오랑캐였다는 것.
하늘이라 믿었던 나라 명나라도 결국 멸망한다는 것.
우리는 너무 약하다는 현실.
우리의 백성들이 너무 고통받고 있다는 현실.
우리도 멸망할지 모른다는 위기.
무엇인가 그들이 강성해진 원인을 밝혀,
우리도 다시 강성해질 수는 없을까 하는 절망에 가까운 소망

 

이런 생각이 20대에 조국을 짊어진 두 왕자의 마음에 없었을까요.

 

그들이 만난 벽 !

위 두 지도는 명나라(왼쪽)와 청나라(오른쪽)의 전성기대의 지도입니다. 위 지도만 봐도 명과 청의 세력의 크기가 정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오랑캐는 100년을 가지 못한다는 말이 신앙처럼 퍼지고 있었다는데요. 이것은 원나라의 멸망이 100년이었데서 나온 이야기인데, 이를 단순히 민간의 말이 아니라 청건국 100년이 되던 숙종대에서 이제 청나라가 망할 것이니 대책을 세워야한다는 말을 조정에서조차도 했다고 합니다. 그때가 바로 위 지도 오른쪽의 청나라 전성기였을때인데 말이지요. 당시 조선의 지배층은 해도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국제정세에 어두웠다는 증거이기도 하지요. 

 

국제정세에 너무 어두웠던 당시 지배층.
정치적 핸디캡에 허우적 거리는 아버지.
굴욕을 극복하지 못한채 허황된 복수를 꿈꾸던 아버지.

 

이렇게 두 왕자는 희한하게도 부딪힌 벽도 참 닮았습니다.

 

두 왕자의 종말... ! 

두 왕자는 모두 그 결말또한 비슷합니다. 일단 광해군의 아버지 선조는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과정이 너무 쿨~하지 못했습니다. 이왕 맡길 왕위 좀 산뜻하게 주변을 정리해 줘도 좋았을텐데, 적자 영창대군이 너무 어린데도 섣불리 세자 교체의 분위기를 만들어 버립니다. 물론 선조의 갑작스런 죽음 또한 독살설을 많이도 만들어 내지만, 일단 광해군 입장에서 본다면 선조의 일련의 행동은 너무 쿨하지 못해 왕위를 이어받는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로 인해 즉위 후에서 그는 형제들을 참살했다는 오명을 지어야했구요. 

 

소현세자 역시 아버지가 발단입니다. 청나라에 볼모로 가서 백성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온것까지는 좋긴한데, 철천지 원수 청나라의 정벌전쟁에 따라다니고, 청나라 장수들을 친구로 사귀기까지 하고, 더 나아가 천주교라는 이상한 종교가지 달고 들어온 이 아들이 너무 한심하기까지 합니다. 분명 같은 아들인데도 둘째(효종)는 반청감정을 드러내고 틈만나면 북벌을 말하는데 말이지요.

 

소현세자의 독살설은 아직도 결론이 나지 못했습니다. 물론 결론이 날 가능성이 너무 적어 보이지요. 그러나 만약 그가 왕위에 올랐다 하더라도, 이미 왕이었던 광해군을 폐위시켜버렸던 조선의 지배층이 왜란와 호란을 겪고서도 멀쩡이 유지되고 있었으니 분명 소현세자 역시 왕으로의 활동은 꽤 제약사항이 많았을 것입니다.

 

설연휴동안 그동안 보고싶었던 탐나는도다를 다 보았네요. 그 드라마에 소현세자와 늙은 광해군이 모두 나오더군요. 그들이 살았던 그 시기의 조선은 참 어려운 시절이었던게 분명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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