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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역사이야기

유럽의 시작, 로마. 그 강대함의 근원은 어디인가?


기원전 753년부터 서기 476년까지 1229년간 존속한 나라 고대 로마, 그 후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1453년까지로 확장해서 본다면, 무려 2206년 동안이나 존재한 나라 로마. 존재했다기 보다는 지금의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서부, 중남부 유럽일대를 지배했던 나라, 고대 로마는 지구상의 역사이래 그와 같은 영향력과 영속력에서 따라올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 로마라는 국가가 왜 멸망했는가라는 주재의 책이나 연구물은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왜 로마가 그리도 강대하고 그렇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를 다루는 경우는 잘 보질 못했습니다. 비록 저의 지식이 그때 그때의 궁금증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진 것을 빼면 시오노 나나미씨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은 것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그 이유를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 이 모든 자료는 위키백과사전과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가 출처입니다.


서기117년. 로마제국


   적도 알맞으면 인재로 쓴다... !  
 

고대로마의 초창기, 여러 문명들이 그렇듯이 특히 동양과는 달리 서양문명의 시작인 그리스 문명의 특징이지만, 로마도 정치체제에 대한 혼란기를 거듭하다가 공화정이라는 정치체제를 수립하게 됩니다. 로마는 일년이 한번 두명의 집정관을 뽑아 로마를 다스리도록 한 것이지요. 그 집정관을 뽑는것은 민회(일반 평민들의 집회)입니다. 그렇게 정치체제에 대한 혼란기를 지나고, 또 주변 국가와의 전쟁과 동맹을 거듭하다가, 이탈리아 중부의 산악민족인 삼니움족을 만나게 됩니다. 


기원전 326년 로마는 삼니움족과의 전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5년후 로마는 삼니움족에게 패배하여, 새로얻은 로마의 영토를 포기하고 삼니움족의 영향권을 존중한다는 내용의 강화조약을 맺게 되지요. '카우디움의 평화'라고 불리는 이 강화조약은 5년간 계속되는데요. 기원전 316년 다시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306년에 삼니움족을 패배시키고 로마의 영향력아래 두게 됩니다. 로마는 이 산악민족 삼니움족과의 전투로 인해 어마어마한 물적 인적 자원을 잃어버리게 되고, 이를 좋은 기회로 여긴 주변 강국(로마는 당시 이탈리아반도에서 최강국은 아니었습니다.)의 침략을 받게 되죠. 다시 삼니움족은 적으로 돌아섭니다. 이때가 기원전 297년입니다. 그 전쟁마저 로마가 이긴것이 기원전 290년입니다. 

로마와 삼니움족과의 전투는 기원전 326년부터 기원전 297년까지 대략 30년간이나 치뤄졌으며, 로마는 그동안 집권관을 잃기도 하는 어마어마한 출혈을 감수해야했습니다. 그럼 제가 왜 이 삼니움족과의 전투를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국가의 사활을 걸고 전투를 벌린 적국 삼니움. 그런데 로마는 놀랍게도 그 후 60년이 지나기도 전에 그 삼니움족 출신을 자기들 집정관으로 선출해버립니다. 우리로 따진다면, 귀화한 일본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우리 국민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하긴 지배와 피지배의 차이가 있어서 정확히 비교할 수는 없는 부분입니다만. 이뿐이 아닙니다. 나중에 황제정 국가가 되고서도, 로마는 로마인의 피가 흐르지 않는 북아프리카 등 다른 지역 출신들을 황제로 등극시키는 것에도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의 이런 습관은 우리가 흔히 아는 로마는 제국주의 국가로 오직 전쟁을 통해서 세계를 지배했다는 편견에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그들에게 복속된 국가 혹은 부족, 민족의 고유문화를 존중했으며, 그들만의 자치기구도 허락했습니다. 로마에게 패배하고 난 후 멸망된줄 알았던 에트루리아인들은 기원전 이라고 연도를 매기는 것이 끝나는 시점까지도 로마 곳곳에서 그들의 장기인 토목, 건축관련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된다니까 말입니다. 특수한 환경의 이집트를 독립국가로 놔둔것이나 특수한 종교관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그들만의 자치기구를 허락한 것도 좋은 예입니다.


   그들의 뛰어난 개방성... !  
 

위에서 그들의 개방성을 이야기했습니다만, '개방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더욱 멋진 사건이 있습니다. 당시 지중해 세계는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부르는 아테네에서 부터 시작된 한가지 열풍이 있었습니다. 바로 민중과 귀족의 투쟁이었지요. 아테네는 결국 민주정을 탄생시키고, 지금도 우리 교과서에는 민주주의의 시작으로 묘사되는걸로 알고 있는데요. 당시 지중해는 이런 민중과 귀족의 투쟁이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어납니다. 즉,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투쟁이라고 해야겠지요. 당연히 고대로마도 그런 투쟁이 일어납니다. 민중의 반란, 파업 등등과 이를 대하는 귀족들의 대책. 역량이 부족한 나라였다면, 당장 망했다고 해도 이상할것없는 상황인데요. 이때, 로마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지만, 일단, 로마는 평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인 '호민관'이라는 직책을 신설합니다. 이 호민관은 재임시기동안 신변을 보호받으며 평민만이 역임할 수 있고, 호민관을 재임하고 나면 로마를 떠받드는 기둥과도 같은 역활을 하는 원로원에 의석이 제공됩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집정관에 입후보할 수 있는 권리를 평민들에게 완벽히 개방해버립니다. 두명의 집정관 자리 중, 하나는 귀족, 하나는 평민.. 이런식이 아니라 그냥 개방해버립니다. 평민이나 귀족이나 입후보하고 선출된 두 명이 둘다 평민이든 귀족이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그냥 개방한 것이지요. 이 정도 개방성을 갖춘 국가? 아니 국가를 떠나서 단체가 과연 있을까요? 그들이 이런식의 개방성을 가지고 분열될 수 있는 국론을 남들보다는 손쉽게 하나로 묶어서 역경을 해쳐나간적이 많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  
 

노블레스 오블리주... 귀족적 책무라고 번역하는데요. 요즘 종종 블로그나 신문지상에 거론되는 것을 보곤 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평민과 귀족의 대결구도. 이런 의문을 하나 가져볼수 있습니다. 왜 평민이 이기지 못했지? 숫적으로는 분명 열세였을텐데... 맞습니다. 다른 주변 국가에서는 대부분 귀족이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달랐지요. 

그것은 바로 로마 귀족들이 가지고 있던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 때문입니다. 바로 그들이 투철하게 가지고 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 로마는 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지배한다는 개념을 적용시키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로마 일생일대 위기였던 2차 포에니 전투, 일반적으로 한니발 전쟁이라고 알려진 전쟁에서 어떤 귀족 가문은 아직 성인이 아닌 남자아이 두명을 남기고 모두 전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비율로 따진다면 로마 귀족들은 평민들 못지 않게 국가를 위해 희생한 전쟁이 많았던 거지요. 그들은 죽을때 유산을 국가에 기증한다던지, 혹은 자신에게 충성해준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면서 정착자금을 준다던지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로마의 세금은 상당히 간단한데요. 일정하게 그냥 몇퍼센트를 부과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부자들은 너무 적게 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요. 당연히 그로 인한 사회불안도 있을 수 있겠지요. 모두 그렇다고 답변할 수는 없지만, 로마 귀족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열심이었습니다. 어떤 귀족은 자비로 그 유명한 로마의 도로를 건설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자신의 고향마을에 도서관이나 목욕탕을 건설해서 기증하는 경우 등이 많았던 겁니다. 어떨때는 너무 많은 귀족이 너도나도 자기 돈으로 건물을 지어 기증하는 바람에 이웃 그리스 기술자에게 도시계획이라는 것을 모르는 민족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너무 기부하다가 빚을 많이 져서 노예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주인의 빚을 갚을려고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까요. 

국가의 위기에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보존하려고 하기보다는 양어깨로 국가를 짊어지고 죽음으로 버틴 귀족들... 그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진 귀족들이 많았습니다.

지루하게 긴 이야기였습니다.^^. 로마가 강대했던 원인을 하나로 찾을 수는 없지만, 그 중에서 로마인들이 가졌던 장점을 이야기해보았습니다. 물론 이는 로마역사 전체를 통해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와중에는 탐관들도 있었고, 잘못된 길로 간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위에 제가 이야기한것은 그저 다른 나라들 보다 라는.. 상대적 개념으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특히, 어느 나라 역사를 보나 분명 위의 장점을 가진 사람은 분명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국가 전체를 관통해서 저런 장점을 가진 국가는 또한 별로 없을 것입니다. 얇은 지식으로 적은 긴 이야기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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