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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역사이야기

아그리파를 통해 본 성공하는 이인자의 조건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Marcus Vipsanius Agrippa)
기원전 63년부터 서기 12년까지 살았던 고대 로마의 군인입니다. 조금 더 살았다면 제정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의 뒤를 이어 제2대 황제가 되었을 사람으로 옥타비아누스의 오른팔이자 그림자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할 2인자의 교과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한 2인자라는 것의 정의를 좀 해두어야겠습니다. 일단 그림자인 자신에게 빛의 역활을하는 1인자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야합니다. 즉, 1인자는 성공해야하며, 진심으로 그 성공에 없어서는 안되는 밑거름이어야하며, 그러면서 자신의 역활에 만족해야합니다. 물론 자신의 행복한 삶 또한 이루어야하는 거죠. 이런 것을 성공한 2인자의 조건으로 본다면, 역사에 몇 명 없습니다. 그 중 한사람이 공화정 로마에서 제정로마로 넘어가는 과도기 그 정치적 대 변혁을 이룩한 옥타비아누스(후에 아우구스투스)의 2인자 아그리파입니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야...!  
 

"부루투스. 너 마저..." 라는 말을 남기고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무려 스물세 군데나 칼에 찔리며 암살당한 날은 기원전 44년 3월 15일입니다. 당시 카이사르의 오른팔은 누가 봐도 안토니우스입니다. 그는 카이사르 암살 후에 시신을 수습하고 원로원에서 카이사르를 암살한 사람들을 탄핵하는 연설로도 유명한데요. 분명 이 시점까지는 안토니우스가 누가 봐도 후계자였습니다.
그런데 안토니우스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불행으로 떠민 카이사르의 유언장이 공개됩니다. 그 내용은 중 안토니우스에게 가장 큰 치명타를 입힌 조항은
제1 상속인 옥타비아누스는 상속과 동시에 카이사르의 양자가 되고, 아들이 된 뒤에는 카이사르라는 성을 이어받는다.
영어로는 시저라고 불리는 카이사르라는 성은 그 후 황제를 호칭하는 말이 됩니다만, 황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 순간에도 카이사르라는 성을 물려받는다는 것이 곧 후계자임은 분명했습니다. 그 유언장에 후계자로 지목받은 옥타비아누스는 한 작은 도시에서 비록 원로원 의원을 지낸 아버지를 두었지만, 출신은 기사계급인 집안에서 자란 18세 6개월의 청년이었습니다.  
이 유언장이 공개되었을때, 사람들은 "옥타비아누스가 누구지?"라고 말할만큼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카이사르는 안토니우스는 가지지 못한 정치적 재능을 옥타비아누스에게서 발견하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피에 연연하지 않은 모습은 정말 쿨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데요. 더더군다나 그 후계자 인선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이 더욱 대단하죠. 그런데 또 대단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군사적 재능이 옥타비아누스에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카이사르는 옥타비아누스의 부족한 군사적 재능을 보완해 주기 위해 일개 병사였던 옥타비아누스와 동갑내기였던 아그리파를 붙여줍니다. 즉, 아그리파는 '로마 최고, 최초의 창조적 천재'라는 말을 듣는 카이사르에게 18살에 발탁된 것입니다. 물론 옥타비아누스의 그림자로서 말입니다만...
일인자는 어느정도 자신의 힘으로 성공까지 하기엔 좀 부족함이 있어도 그 바탕은 가지고 있는 즉 어느정도 두각은 나타낼수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인자는 일인자가 알아봐줘야만 합니다. 성공하는 이인자가 될 첫 조건은 성공할 일인자로부터의 선택이 필수 조건일 것입니다.


   일인자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아야...!  
 

일인자로 부터 선택받았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지요. 무슨일인지 아무 어려움없이 그냥 성공하는 사람은 없는 모양입니다. 특히 18살에 카이사르의 후계자가 된 옥타비아누스는 더 했겠죠. 자신이 후계자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안토니우스는 30대의 어마어마한 전쟁 경험을 가진, 게다가 따르는 부하도 많은 장군이었고,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유언장에 이름 하나 딸랑 들어가 있는 처지니까요. 물론 그것만으로도 위력은 대단합니다만, 역시 그것만 가지고는 안되죠. 특히 안토니우스가 야심을 가지고 있으니 더욱 문제 입니다. 
카이사르 암살을 알고 18살의 두 청년은 로마로 떠납니다. 그곳에선 이미 유언장에 이름 올리기만 빼면 모든걸 가지고 있는 안토니우스가 있지요. 기원전 42년, 즉 카이사르 암살 2년 후 간신히 옥타비아누스는 지중해 세계의 서부를 안토니우스는 동부를 분할 담당해서 카이사르 암살의 범인과 그 패거리를 몰아내자는 것에 합의를 봅니다. 그러나, 기원전 41년부터 기원전 31년까지 옥타비아누스와 아그리파는 암살자들과의 전투를 어렵게 어렵게 치뤄나갑니다. 뭐 안토니우스가 그렇지 않겠냐 하시겠지만, 안토니우스가 맡은 지중해세계 동부는 오리엔트적인 문화가 강해 왕이 항복하면 그만이거든요. 또 어차피 처리할 적도 없었구요. 그러니 10년동안 착실히 군대를 양성하고 물자를 모아놓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일상생활/미스테리] - 클레오파트라 죽음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에서 이미 이야기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옥타비아누스가 최종 승자가 되죠.

그러나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어마어마한 군사력을 가진 안토니우스와 비교해서 너무 가진것이 없는 일인자 옥타비아누스를 15년 간이나 옆을 지키며 모든 전쟁을 담당해서 치뤄낸, 앞날을 예상할 수 없고 패색이 짙은 상태에서부터 시작한 18살 청년 아그리파는 결코 옥타비아누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인자 보다 앞서려 하지 않아야...!  
 

어마어마한 고난을 같이 이겨내고도 서로 멀어져 일인자로부터 버림받은 2인자들은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아그리파는 참 행복한 말년을 보내는데요. 그런 아그리파를 이야기하는 시오노 나나미씨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오겠습니다.
카이사르는 옥타비아누스에게 군사적 재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그 방면의 재능이 뛰어난 아그리파를 옥타비아누스의 협력자로 발탁한 것이다. 아우구스투스가 거둔 군사적 승리는 모두 아그리파의 전략과 지휘 덕분이다.

이탈리아 시골의 이름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군단에 지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그리파는 교육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교육을 받지 못한 것에 열등감을 품지 않는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로서, 그 건전한 정신은 실로 로마인답게 실용적인 재능으로 발휘되었다.

로마의 방어망은 아그리파의 전략적 안목과 그가 지휘하는 군단병이 없었다면 실현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독일의 대도시인 쾰른의 옛 이름은 '콜로니아 아그리피넨시스'인데, 로마의 군단기지로 출발한 이 도시를 건설한 사람이 바로 아그리파이다.

아그리파의 일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우구스투스의 생각이 실현되도록 도와주는데 바쳐졌다. 군사만이 아니라 건설에서도 두 사람의 협력관계는 완벽하게 기능을 발휘했다.

신전, 목욕탕, 인공 호수 등등의 공공 건축물을 짓는 데에는 열심이었던 아그리파였지만, 그가 지은 사적인 건축물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그의 집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그리파가 세운 공공 건축물은 수도 로마나 본국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제국 전역에 널려 있다.

그 한 예만 들어 보면, 남프랑스의 님에는 오늘날에도 '퐁 뒤 가르'라는 다리가 남아 있다. 길이 370미터, 높이 48미터의 수도교[관련글]인데, 사람들이 다닐수 있도록 보도도 딸려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중세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 다리가 로마의 유적이라는 것은 잊어버리고, 이런 건조물을 인간이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악마가 만든 것이라고 오해했다는데, 그 다리를 만든 것은 악마가 아니라 분명 인간이고, 기원전 19년에 아그리파의 명령으로 건설된 것이다.

일생을 일인자 옥타비아누스에게 바친 아그리파는 그 어디를 들여다 보아도 개인적인 재물에 연연했다는 기록도 없으며, 자신의 핏줄의 출세에 연연했다는 흔적도 없습니다. 물론 일인자 옥타비아누스가 일일이 잘 챙겨준 것도 있겠지만, 본인이 무관심했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또한, 옥타비아누스에게 불만을 가졌다든지, 혹은 그 둘의 관계가 무너질 조짐을 보였다는 증거도 찾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그림자로서 철철히 만족할 줄 아는 자세 또한 이인자의 조건일것입니다.
오늘도 쓸데없이 긴글 읽으신것에 감사드립니다. 그저 오늘은 그림자의 일생을 살아간 아그리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 글의 기본 바탕은 시오노 나나미씨의 로마인이야기입니다. 뭐 그럴리 없겠지만, 이게 또 왜 분류가 미스테리이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이런 이인자의 존재는 세계사의 위대한 위인들의 존재만큼이나 미스테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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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라라윈 2009.11.16 03:11

    미술하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그리는 것이 아그리파인데..
    정작 수백장 그려놓고도 아그리파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네요...
    pinkwink님 덕분에 아그리파에 대해 제대로 배웠어요~ 감사해요~ ^^

  • BlogIcon 한수지 2009.11.16 05:54

    맞는 말슴입니다
    2인자의 조건.. 또는 스탬으로서의 조건
    최고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고를 이루기 위한 스탭의 기능도
    무서운 것이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 BlogIcon 박재욱.VC. 2009.11.16 10:21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어릴 때 읽었던 로마인 이야기와 먼 나라 이웃나라가 생각나네요. 성공할 수 있는 2인자에 대해서는 고민이 부족했는데, 그 방향으로 좀 더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

    • BlogIcon PinkWink 2009.11.16 11:59 신고

      ㅎㅎ.. 이번 포스팅 한참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항상 멋진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하고 있어요...ㅎㅎㅎ^^

  • BlogIcon 영웅전쟁 2009.11.16 12:28

    또 다른 세게사 이야기..
    공부를 잘 겸합니다.
    그나저나
    매일 새벽에 ㅎㅎㅎ
    매일 밤 새우시나 봅니다.
    건강이 살짝 염려되는 ㅋ
    잘보고 갑니다.
    멋진 한주 열어 가시길 바랍니다.

    • BlogIcon PinkWink 2009.11.17 08:19 신고

      요즘 희한하게 저녁에 일찍 잠들어서 자정경에 일어나던지
      혹은, 오후에 잠들어서 저녁에 일어나는 생활패턴을 가져벼렸습니다... 음.. 그러나 수면시간 자체는 그저 평균치인 6시간정도입니다...ㅋㅋ^^ 건강을 다 걱정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 BlogIcon 멀티라이프 2009.11.16 14:13

    2인자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좋을글이네요.

    조금 잊고 살아가던 것들도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구요..

    이제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네요~ 행복한 한주 되세요^^

  • BlogIcon 독스프로모션 2009.11.16 15:29 신고

    중학교 3학년때, 어떤 남자 조갹상을 하나 사다, 무작정 그렸는데 그 분 이름이 아그리파 라는건 고1이 되서야 알았습니다. 미술교육(?????) 을 독학(여기에 학'자를 붙이기도 수줍군에 ㅎㅎ) 한 부작용이랄까요

  • BlogIcon 분홍별장미 2009.11.16 17:21

    1인자를 넘어서는 2인자라면 곧 2인자가 1인자가 되겠죠?? ㅡㅡ;;
    그리고 1인자가 선택해줘야 2인자로 살아남을수 있고...
    2인자로 살아남기도 힘든것 같아요.. 이곳저것에서 견제도 받을테고 ㅎㅎ

  • BlogIcon 아이미슈 2009.11.16 17:22

    늘 생각하는 거지만 로마시대야 말로 낭만적이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넘치는 시대 같습니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 BlogIcon 탐진강 2009.11.16 20:45

    옥타비아누스와 아그리파 이야기 잘 봤습니다.
    일인자 곁에는 충직한 이인자가 필요한가 봅니다.

    • BlogIcon PinkWink 2009.11.17 08:29 신고

      충직한 이인자 없이 성공한 일인자는 많지만
      아름다운 일인자 없이 성공한 이인자는 없다...
      라고나 할까요? (근데 맞는 이야기일까요?^^)

  • BlogIcon casablanca 2009.11.16 21:34

    분열과 배신의 시대에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한참 음미해볼만한 역사인것 같습니다.
    1인자와 2인자의 관계란 신뢰가 없으면 안되는거지요.
    좋은 포스팅,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 BlogIcon boramina 2009.11.17 17:53

    저는 물론 일인자는 아니고, 이인자도 아니고, 한 10인자쯤 될까요?ㅎㅎ
    결국 어떤 이인지를 갖느냐 하는 것도 일인자의 능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BlogIcon 바람처럼~ 2009.11.17 22:26

    결국 1인자도 2인자가 있어야 돋보이는법 ^^;

  • BlogIcon doolyncat 2009.11.18 16:12

    역사라면 사극조차 보고싶지 않을 만큼 싫어라하는 저로서는 PinkWink님의 해박한 역사지식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자고로 큰 사람이 되려면 역사를 알아야 하는 법인데..전 큰사람 되긴 글렀나 봅니다..ㅋㅋ
    멋지세요..앞으로도 재미있고 쉽게 많은 이야기 들려주세요~

  • BlogIcon 아고라 2009.11.20 13:17

    주위 사람들에겐 반드시? 1인자가 되라며 으쌰으쌰 응원해놓구선 정작 저는 2인자를 좋아한다는...
    (앞에 나서야 하는 1인자는 제 성격에 맞지 않거든요)
    퐁뒤가르...제가 넘 좋아하는 다리입니다. 아니, 퐁뒤가르뿐만이 아니라 고대 건축물들...그 정교함과 섬세함이 넘 좋아요. 생각 많이 했겠구나..하는 느낌이 팍팍 들잖아요. 현대로 오면서 과학이 발달하고 지능은 높아진다고 하는데 왜 정작 만들어지는 것들은 고대 것들보다도 못할까요.

    • BlogIcon PinkWink 2009.11.20 20:45 신고

      그렇죠? 많이 부서져서 원래의 형체를 알아보기만 할 수 있는 것들도 고대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은 뭔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신기하게도....^^

  • BlogIcon 백마탄 초인 2009.11.23 00:24

    오호,,여기서 아그립화를 보다니,,,하하
    기림 기릴때 기본석고로 학을 띠도록 기리는 아그립화,,,하하;;

    1인자도 좋을테지만, "유일한 자"가 더 좋을듯!!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