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16년 1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인 카르타고의 젊은 장수, 한니발이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맥을 넘으면서 시작된 2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합니다. 그리고, 로마는 단 한명의 장수 한니발에게 티치노, 트레비아, 트라시메노에서 연달아 패배합니다. 연이은 대패에 로마는 단단히 설욕할 생각으로 병력을 재편성 한니발 토벌군을 조직합니다. 그렇게 해서 한니발의 대로마 4번째 전투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칸나에 전투입니다.
큰 전투로만 총 9번을 치룬 한니발과 로마, 사실 로마는 국가 이름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카르타고와 로마의 전투라고 해야하지만, 후세 역사가들은 2차포에니전투 자체를 한니발전쟁이라고 부르는데다, 카르타고 측 장군은 사실상 한니발 한명이기 때문에 그냥 한니발 대 로마라고 하겠습니다. 총 5번의 큰 대회전 전투에서 한니발은 4번의 전투를 이탈리아반도 안에서 치룹니다. 그리고 4번을 다 이깁니다. 마지막 5번째 전투를 스키피오에게 지면서 2차포에니전쟁 - 한니발전쟁도 끝이 나는데요. (평원과 같은 곳에서 양군이 포진을 마치고 펼치는 대회전 중에서 한니발과 로마의 전투만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출처 : 위키피아
그 중 오늘 이야기할 4번째 전투인 칸나에 전투와 마지막 5번째 전투인 자마전투가 가장 유명합니다. 세계 각국의 사관학교에서 꼭 가르친다는 전투이며, 전쟁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부하게 되는 전투이거든요.
칸나에 전투는 포위섬멸전의 교과서라고 합니다. 교과서라는 것은 누구나 열심히 공부해서 따라하면 어느정도 성과가 나오는 것이어야하는데, 그런면에서도 한니발의 전투방법은 확실히 교과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승의 전략이라는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필승에 가까운 전략이라고 한다면, 오늘날의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의 장점은 무력화하고, 아군의 장점은 부각시킨다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전투 중에서 그 전개과정이 지휘관의 출중한 능력으로 인해 한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와 같은 흐름으로 흘러가는 경우는 대부분 적의 장점은 빠른 기동력으로 무력화 시키고, 그림같은 포위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고대 유럽에서 3대 명장에 이름이 꼭 들어간다는 한니발의 칸나에 전투는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확실히 교과서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출처 : 위키피아
이탈리아 북쪽에서 침공한 한니발이 로마를 지나쳐 반대편으로 가버릴때까지 로마는 딱 두글자 "패배"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니발 토벌군으로 로마는 보병 8만명에 기병 7200명을 조직 칸나에에서 결전을 하게 됩니다. 이때 한니발의 병사는 알프스를 넘는 고난을 같이 경험한 보명 2만명 누미디아 기병 6천명에 지금의 프랑스 남부에서 모집한 갈리아 용병 2만명에 갈리아 기병 4천명으로 총 5만명입니다.
또한, 한니발에게 연패하긴 했지만, 당시 지중해세계에서 로마의 중무장보병은 가장 높은 전투력을 가진 보병이라고 알려져 있고, 또한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로마의 중무장보병은 모두 시민으로서 자긍심이 아주 높았습니다.
결국 로마의 장점은 8만명이나 되는 중무장 보병입니다. 또한, 로마의 기병은 귀족들의 자제들로 구성되어 일종의 사관학교 생도들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물론 기병의 전투력은 한니발쪽에 밀리지만, 전투의욕과 자긍심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반면 한니발쪽은 알프스산맥을 같은 넘은 한니발의 부하는 사실상 2만 6천명입니다. 나머지는 그 후 갈리아지역에서 모집한 용병으로 전투 분위기가 패전으로 흘러가면 전투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니발쪽의 장점은 우수한 기병에 있습니다.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최고의 기병전력으로 꼽는 누미디아 기병이 한니발쪽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위키피아
위 그림에서 붉은색이 로마, 파란색이 한니발입니다. 로마는 이전 3차례의 전투에서 한니발의 장점은 기병을 이용한 빠른 기동력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병전투력이라는게 단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충원하기 어려웠고, 두배나 되는 보병을 믿고 위의 그림처럼 중이 두꺼운 형태의 진형을 펼쳤습니다. 아래 흐르는 강은 오판토강인데, 강을 끼고 싸운 이유는 한니발 병력이 우회해서 후방을 침투할 수 있는 양쪽 측면 중 하나를 막으려는 의도였을 겁니다.
그럼 한니발은 어떻게 포진을 했냐면, 로마군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볼록하게 보병을 배치합니다. 그것도 앞쪽에는 갈리아용병을 포진하고 자신의 수족과도 같은 카르타고 병사들은 그 뒤쪽에 배치합니다. 그리고 양쪽에는 기병을 둡니다.
사실 한니발의 의도는 처음 말한데로 적의 장점인 중무장보병을 무력화시키는데 있습니다. 그의 의도는 볼록하게 돌출되어있는 갈리아용병이 최대한 시간을 벌면서 로마 중무장보병을 묶어두고 나머지 기병은 상대적으로 우수한 자신의 기병으로 몰아버리겠다는 의도입니다.
어차피 로마도 같은 맥락의 포진입니다. 장점인 중무장보병으로 중앙돌파를 하겠다는 의도니까요. 여기서 문제는 바로 기동력입니다.
전투시작과 동시에 오판토강 근처의 로마기병과 한니발의 기병이 격투를 펼칩니다. 정면에서 일대일로 붙은 경우니 당연히 개개의 전투력이 크게 작용을 했을 겁니다. 물론 처절하게 로마기병이 버티긴 하지만, 결국 한니발 기병에게 패주합니다. 더군다나 우회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선정한 강옆이 오히려 전투력이 약한 로마 기병의 활동 범위를 좁혀줘서 패배의 원인을 제공합니다. 이렇게 강쪽의 한니발 기병이 이기고 있을때, 중앙에서 격돌한 로마 중무장보병은 갈리아용병으로 구성된 한니발 중앙을 몰아부치면서 전진합니다. 여기서 최대한 천천히 갈리아용병은 뒤로 빠지게 되는데요.
강쪽에서 이긴 한니발 기병은 로마 중앙의 뒤쪽을 우회해서 반대편으로 달려가서 또다른 기병대의 후방을 급습합니다. 이로써 중앙에서는 보병끼리의 격돌이 이뤄지고 있을때, 한니발의 양쪽 두 기병은 강반대편에서 하나남은 로마 기병대를 협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점에 한계점에 다달한 한니발의 중앙 갈리아용병은 측면으로 이동해버립니다. 로마 중앙의 중무장보병입장에서는 신나게 몰아부치던 애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그 후방에 이제껏 전투에 참가하고 있지 않던 또다른 보병 2만명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스페인남부에서부터 한니발을 따라 진군해온, 알프스산맥을 죽을고비를 넘겨가며 넘어서 갈리아 산악 부족을 재패하고, 앞선 로마와의 3차례전투를 치러낸 한니발의 핵심 부하들인 것입니다.
이제 로마의 기병이 한니발 기병에게 섬멸당하고 있던 시점, 로마군의 자랑인 중무장보병은 앞에는 한니발의 2만보병, 양옆에는 한니발의 갈리아 용병에 의해 포위되고 맙니다. 이 시점에서는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4만명의 한니발 보병이, 8만명의 로마군을 어떻게 3면에서 포위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맹공을 한니발 보병은 견뎌냅니다. 그 동안 한니발의 기병이 로마군 보병의 후방에 나타나는 겁니다. 이렇게 그림같은 포위망이 완성된 것입니다.
칸나에 전투에서 한니발은 일종의 공식을 제시한 것입니다. 전투에서 이기고 싶다면, 적 주력을 무력화시키라는 겁니다.
로마의 주력인 중무장 보병을 전체 병력 5만으로 무력화시킬 방법은 역시 포위섬멸전입니다. 그러나 포위망을 구축할려면 두 개의 방해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양쪽에 포진한 기병대입니다. 로마는 이 기병대로 전쟁을 이길 생각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한니발과는 반대로 기병대가 버텨주고, 중무장보병이 중앙돌파를 하고 다시 배면전개를 통해 적 주력인 기병대를 포위할 생각이었는데, 한니발은 역으로 중앙돌파를 허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두번째는 역시 두껍고 높은 전투력의 로마 중무장 보병이 임기응변이 뛰어난 지휘관을 만났을때 자신의 작전이 역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한니발의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이 정보수집에도 뛰어났기때문에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한니발은 이미 전투가 이뤄지기 전에 로마측 지휘관의 성격까지 파악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보 수집과 판단을 게을리하지 않고 적 지휘관의 성격까지 파악한 다음, 칸나에전투 직전에 여러 소규모 정찰대 수준의 전투에서 계속 조금씩 져주면서, 전투의 주도권은 로마가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정면대결에 끌고 나오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실제 전투에서는 적을 향해 볼록한 현태의 진형을 만들고 적절한 속도로 뒤로 빠지면서 비록 기병대는 버티기 힘들어보이지만, 중앙의 보병은 성공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듭니다. 사실 그것이 제발로 포위망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인데 말이죠.
그러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포위섬멸전, 포위섬멸전의 교과서라고 칭송받으며 사관학교에서 필수적으로 가르친다는 이 칸나에 전투는 또하나의 교과서로 취급됩니다. 이번에는 안좋은 쪽으로 말이죠. 한니발은 로마연합의 붕괴를 노리고 있었고, 큰 전투를 연달아 승리하면서 로마 동맹국의 이탈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이탈리아 남부의 동맹도시들은 몇몇이 이탈하긴 하는데요. 특히, 칸나에 전투에서는 로마의 귀족, 즉 지도층 인사의 1/4이 사망합니다. 언젠가 한번 국가 로마가 강성했던 이유는 위기상황에서 국가의 지도층이 죽음을 불사하고 일선에서 싸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는데요. 이 전투에서도 확실히 그런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확실히 전투에서는 이기지만, 결정적으로 로마의 붕괴를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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