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수업을 하러 많이 다니는데, 간혹 인하대 학생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고향이 어딘지 묻는 아저씨 필이 나긴 하지만.ㅠㅠ] 인하대라는 학교 이름의 유래를 아냐고 물어봅니다. 아는 학생들도 있고, 또 다르게 알고 있는 학생들도 있고, 또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하대는 어떻게 이름이 지어진것일까요?
인하대학교 공식 홈페이지에는 "인하"대학교는 인천+하와이가 그 유래라고 적혀있습니다. 여기에는 너무나 가슴이 뭉클한 단어가 있습니다.
6.25 와중, 1952년 하와이 교포 이주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우리나라의 공업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하와이 교포들의 정성어린 성금으로....
여러분은 느끼시나요?
- 일단, 6.25 전쟁 와중이라는 것 [1952년]
- 하와이 교포 이주 50주년이니, 1952년에서 50년 기념이라면, 그 시작은 1903년이라는 것. [일제 시대]
- 1952년 당시 하와이 교포들이라는 것
너무나 뭉클합니다. 이 이야기들을 한 번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하와이 이민자들...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소장의 "하와이 다문화에 한인 이민자들도 기여했을까?: 하와이 한인 이민사의 경험과 교육, 1903~1959"라는 글[아시아리뷰 제4권 제1호, 2014: 73-93]에서 소개한, 1927년 4월 8일 Academy of Art(현 호놀룰루 미술박물관) 개관식에서 창설자 Anna Rice Cooke의 글이 아래와 같습니다.
하와이에 있는 여러 나라와 민족의 자녀들은 미술과 접하지 못하는 사오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 나라 뿐만 아니라 같이 어우러져 사는 하와이 원주민,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필리핀인, 북유럽인 등 모든 이웃들의 문화에...
뭔가 1927년 하와이에서는 한국인이 그 지역의 한 구성원임이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1927년이면 조선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제국이 1910년에 사라진지 17년이 지난, 일제에 합병된 상태였는데 말입니다.
하와이 왕국이 멸망한지 3년 후, 미국이 하와이를 직접 지배하기 시작한지 겨우 3년이 지났을때 조선인들, 부인 21명, 아동 26명을 포함한 102명이 1903년 하와이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05년까지 누적 이민자는 7400명이라고 합니다. [그 중 2000여명은 다시 미국 본토로 가고, 또 1000명은 다시 조국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 시기는 아직 대한제국이 멸망했을 때는 아니었습니다. 조선인들은 대부분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하와이에서 생활하던 일제 시대 우리 조선인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새벽 4~5시부터 백인 감독관의 감독아래 노예처럼 일을 했다고 합니다.
하와이 교민들의 조국 사랑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하와이로 가는 배를 탔을까? 배값은 누가 지불했을까? 빚이었습니다. 배삯과 하와이 상륙비가 빚으로 남았고, 대체로 2~3년은 정말 아끼며 농장일을 하고 저축을 해야 그 돈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1919년 3.1 독립운동 소식에 하와이 이주 여성들은 김치[당시 하와이의 외국인들, 필리핀, 포르투갈인, 일본인 등은 모두 한국의 김치를 전파받아 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를 팔아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1919년 시작된 김치 판매는 1930년대 한인 2세 조 김(Joe Kim)의 김치 공장이 운영되고 "다이아몬드 케이 김치"라는 상품으로 미국 본토에까지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 교육청 보고서(Territory of Hawaii, 1906) 중 1906년에 발행된 내용에는 하와이 공립 초등학교에 161명의 한인 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힘들게 힘들게 지내던 우리 조상들은, 나라가 사라졌어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협회를 구성하고 하와이의 한인 교육과 경제발전을 위한 활동을 시작합니다.
인하대학교는 "인하"라는 이름에서 민족의 자긍심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인하대학교의 전신인 인하공과대학은 한국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던 1952년 미국의 MIT와 같은 공업 발전을 위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설립이 추진되었습니다. 노예와 같은 상황에서 일하던 나라잃은 백성이었던 우리 선조들, 아니 선배님들..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백성들이, 정말 피땀어린 돈, 독립자금에 지원하려고 모은 돈을 고국에 공과대학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기부한 것입니다. 무려 15만 달러라고 합니다.
인하대 학생여러분이 혹시 이 글을 읽는다면, 인하대는 교명에서 나와있듯이, 나라잃은 백성, 110여년전 우리 선배님들의 한과 희망이 섞여 있는 학교입니다. 자긍심을 가지고 자랑스러워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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