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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끄적거림

여성에게 핸드백을 사줄 수 있는 남자?

(애인이든 아니든) 여성에게 선물을 할때 핸드백을 사준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인것같습니다. 사실 선물이야 일단 비싸주기만 해도 대충 폼은 잡을 수 있긴한데요. 그건 역시 보석류에 들어가는 이야기인듯합니다. 최근에 선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요. 어떤것으로 살까를 고민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일단 치수를 알아야하는 옷과 반지(이건 또 의미가 있다고 오해하거나 혹은 거부해버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는 제외하고 그럼 손쉽게 떠올리는것이 팔찌 등등의 엑세사리와 핸드백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핸드백을 생각하던중 그것을 받을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니 여간 난감한게 아닙니다. 일단 평상시 내가 입는 옷도 신경을 안쓰니 아무리 자주 만나는 친구사이라도 그 사람의 옷차림에 무신경한 제 입장에서, 도대체 평상시 그 사람이 무슨 옷을 입는지 생각나질 않는 겁니다. 그러니 그에 어울리는 핸드백을 고를순없죠. 그리고 명색이 선물인데 데리고 다니면서 일일이 골라줄수도 없습니다. 제 나이쯤되니 핸드백 고르러 여성을 데리고 가면, 살가운척하는 가게 종업원들의 "애인은 좋겠어요. " 등등의 멘트마다 씁쓸이 웃어줘야할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지요. 또 어느정도 가격까지 고르면 되는걸까 하고 불편해할 상대방과 너무 비싼걸 고른걸 알면서도 쿨~하게 웃어야할 제 입장도 고려해야겠지요...

결국은 팔찌로 선택을 했는데요. 그것을 포장하는 시간동안 짧게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생각이 나네요. 참으로 로맨티스트이자 패셔너블한 친구인데요. 제가 생각하는 패셔너블한 남자는 자기도 잘 꾸미지만, 상대 여성의 패션을 배려할 줄 아는 감각이 필수인듯합니다. "명품"이라는 것은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멋질때 명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이 친구가 당시 자기 애인에게 핸드백을 사주기 위한 쇼핑에 쫄래쫄래 제가 따라나선거지요. 당시엔 저도 애인이 있어서 자주 쇼핑을 다녔는데 정말 쇼핑 싫어했거든요. 그런제가 남자친구랑 쇼핑이라니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겠습니까.... 근데... 재미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그 행동을 구경하면서, 꼭 딴나라 사람보는듯한 그 느낌이 신선하더군요. 여자친구의 옷차림을 기억해내면서 그와 어울릴지, 혹은 최근에 구입한 구두와 어울릴지, 너무 가벼워보이지는 않을지, 그렇다고 너무 나이있어 보이진 않을지. 등등을 고민하는 그 모습....

멋지게 바람피우는 남성은 보석류의 선물을 잘 해줄지 몰라도. 핸드백. 그것도 상대가 마음에 들어할 핸드백을 고를 줄 아는 남성은 정말 위대한 사람인듯합니다. 뭐 저는 그런 사람은 못되니 그저 이렇게 어두운 연구실 한 구석에 솔로로 지내는가봅니다. ㅋㅋㅋㅋ 제가 좋아하는 작가 시오노 나나미씨의 「남자들에게」라는 책 내용중 "여자와 핸드백"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좀 길긴 하지만, 그 전문을 소개합니다.

여자와 핸드백

남자들은 여자 핸드백을 여자 특유의 잡동사니를 넣고 다니는 주머니 정도로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오해다. 여자가 생각하는 핸드백이란 여자의 마음, 그리고 육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자에게는 가방이란 존재가 서류를 넣어 다니는 아타셰 케이스든 요즘 유행하는 세컨드백인든, 아니면 회사 이름이 들어간 종이 가방이든, 주머니에 다 못 들어가니 할 수 없이 들고다니는 의미밖에 없으리라. 마음의 일부는 커녕 육체의 일부도 결코 아닐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주머니'에 대한 인식이 서로 틀린다. 그러니 형태, 색, 소재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것과 남자 것은 그만큼이나 틀린다.

여자 핸드백에는 확실히 여러 가지 물건이 올망졸망 들어 있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무엇이 들어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핸드백을 들고 다닌다는 행위 자체가 의미를 가진다. 실제로 핸드백을 들지 않은 여인을 상상해보라. 무엇인지 허전한 느낌이 들 것이다. 커다란 주머니가 달려 있어 필요한 것은 몸에 다 지녔다 할지라도 여자는 핸드백을 돌고자 한다. 아무것도 손에 없으면 중요한 그 무엇이 빠진 것을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핸드백이란 물체가 여자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 하나 소개하고 싶다.

제2차 세계대전 조금 전이나, 벌써 오십 년을 훨씬 넘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즘 정권하에 있었다. 무솔리나는 중하층 출신으로 교사를 하던 중 파시즘 제창자가 되어 전체주의 정권을 수립한 후 이십년이나 이탈리아의 독재자로 군림한 남자이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동일시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지만, 나는 이 두 사람이 무척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선 무솔리니는 수백만 유태인을 학살하고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히틀러의 냉혹함은 없었다. 다른 사라보다 자신이 잘났다는 우월감과도 무관한 사람이었다. 변경의 북방민족인 독일인과 고대로마 때부터 도회지 민족인 이탈리인의 서로 다른 특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말해 무솔리니는 좋든 나쁘든 히틀러에 비해 확실히 인간적이었다.

무솔리니에게 크라레타 페타치라고 하는 애인이 있었다. 무솔리니에 비하면 무척 젊은 이 로마의 여인은 의사의 딸로, 말하자면 교양있는 가정교육이 몸에 밴 숙녀였다. 미혼 그리고 애인인 채로 일생을 보냈다. 1930년대에 유행한 아르테코풍의 우아한 실크옷이 잘 어울리는 후리후리한 몸매의 정열적인 남국 여인이었다.

교양이 특별히 높지는 않았다. 지적으로도 내세울 만한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천한 구석은 없었다. 집안에 맞추어 장래성 있는 젊은 의사와 결혼을 했더라면 자식을 두셋 낳고도 전혀 몸매가 흐트러지지 않을 아름답고도 명랑한 여자로, 남편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 아내를 소개시킬때면 저절로 자랑스러움이 스며나올 그런 부인이 되었을 것이다. 산뜻한 봅바람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여름의 격정과 가을의 우수, 겨울의 절망을 맛보게 된 것은 무솔리니와 만났기 때문이었다.

무솔리니는 물론 정부인이 있었다. 라켈레란 이름으로 자식도 대여섯은 둔 사이였다. 조강지처라 할까. 정신도 육체도 무솔리니를 닮아 강건한 농민타입의 여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잘 꾸려나갔다. 무솔리니는 애인은 아내와는 정반대의 여자를 고른 셈이다. 처는 처. 애인은 애인. 가톨릭 나라이므로 이혼은 문제 밖이다.

크라레타의 존재는 곧 상당수의 이탈리아인 사이에 알려지게 되었다. 무솔리니 자신이 애인의 존재를 열심히 감추는 형의 남자가 아닌 것도 있었지만, 한 나라의 넘버원의 애인쯤 되면 감추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탈리아인들은 애인이 있는 이 지도자를 그 이유로 바난하지는 않았다. 이탈리아인의 최대의 장점은 정신적인 밸런스가 있다는 점이다. 인생을 흑과 백으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 인종들로서는 애인의 존재란 인간적인 증거쯤으로나 해석되었을까.

또한 크라레타는 독재자의 애인이란 것을 이용하여 뭘 해보겠다는 야심가 타입이 아닌 점도 사람들이 입을 다문 이유였으리라. 이 애인은 국민의 경애를 일신에 모으고 있는 한 남자의 사랑만으로도 만족했다. 또한 크라레타의 집안 사람들도 정권을 쥔 남자의 애인이 된 딸을 앞세워 출세를 해보려고 획책하는 것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겨로가적으로 페타치가 사람들이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은 없었다. 이 또한 이탈리아인들이 그들 사이를 비판하지 않은 이유였다.

정부인 라켈레의 심기가 그리 편치만은 않았으라라. 그러나 이혼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자식을 줄줄이 낳은 부인의 사회적 지위는 안전했다. 게다가 공식적인 행사가 있으면 무솔리니는 옆자리는 라켈레의 것이었다. 농민의 현실주이적 사고방식으로 보자면 의외로 담담했을지는 모른다. 또한 무솔리니는 라틴 남자, 아내를 나 몰라라 하는 무신경한 남자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 두 여인을 두고 고심하는 모랄 또한 전혀 없었다.

이런 상태로 몇 년쯤 흐른 뒤, 이탈리아는 독일과 연합하여 전쟁을 시작한다. 처음엔 잘 나가던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삼국은 상황이 곧 바뀌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황은 더 설명할 것도 없다. 이 삼국 중에서 맨 전저 전장을 이탈한 것은 이탈리아다. 장화 모양을 한 이탈리아의 발끝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한 연합군은 이탈리아 내의 파트티잔의 도움도 있었기에 북이탈리아 국경 가까이까지 무솔리니를 몰아 붙였다. 독일 하사병으로 변장해서 스위스로 독망하려던 무솔리니가 파르티잔에게 붙잡힌 것은 일본이 항복하기 일년 전이었다. 여기서부터 애인 크라레타가 출현한다.

파르티잔에게 붙들렸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런 무솔리니를 크라레타는 백방으로 수소문한다. 한편 부인 라켈라는 자식들을 데리고 중립국 스위스로 도망한다. 무솔리니는 아내에게 자식들을 위해 살아달라고 참으로 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편지를 보냈다. 반대로 자식이 없는 애인은 사랑하는 남자와 같이 죽을 것만 생각한다.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 페타치 집안 사람들은 아무 잘못도 없었으나, 무솔리니 애인의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입게 될지 모르는 파르티잔으로부터의 위험을 피해 스페인으로 피신했다.

가족을 다 떠나 보낸 크라레타에게는 이제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가서 죽는 것만이 남아 있었다. 겨우 찾아낸 무솔리니를 두 번 다시 잃지 ㅇ낳으려고 결심한 모양이다. 파르티잔도 그 애인까지 죽이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대장은 어떻게든 크라레타를 구해 주려 했지만 정작 크라레타 본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무솔리니를 위로하기 까지 했다.

어느 날 크라레타는 지금까지 가지고 다니던 핸드백을 두고 농가를 나선다. 좁은 골목길가의 어느 집 철문 앞, 기관총의 폭우 같은 집중 세례.... 그렇게 독재자는 죽어가고 그를 위해 마지막까지 이 살인행위에 저항하던 크라레타도 곧이어 죽어간다.

두 시체는 이미 처형당한 다른 파시즘 정권하의 중요인물들과 함께 밀라노 광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누군가 뒤집혀 올라간 크라레타의 치맛자락을 허벅지 사이에 끼워 다시 올라가지 않게 고정시키자, 군중들은 그 자에게 돌을 던져댔다.

언제나 들고 다니던 핸드백을 마치 죽음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그날아침만은 들지 않은 크라레타. 이런 그녀의 마음을 눈치챈 이는 파르티잔의 그 대장이었다. 그는 백작 출신으로 농민이나 노동자가 대부분인 파르티잔에서 백작은 드문 존재였다. 우리들이 이 에피소드를 알게 된 것도 그 백작이 전기작가나 연구자에게 증언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라면 여자에게 핸드백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 미처 알지 못했으리라. 귀족 출신인 만큼 어느 학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피부로 느껴 알고 있었으리라. 죽음을 각오한 여인이 이 세상의 그 모든 것을 버리는 마음으로 무의식으로나마 핸드백을 두고 나선 것을 이 백작만은 눈치챈 것이다.

나는 구두와 핸드백을 세트로 갖추지는 않는다. 구두는 다리가 굵다는 열등감 때문에 되도록이면 스타킹과 같은 계열의 색상을 고른다. 덕분에 어디 나갈 때마다 구두가 늘어 걱정이다. 반대로 핸드백은 드레스에 한 점 꽃을 다는 마음으로 고른다. 아니 맘에 드는 핸드백을 우선 사고 난 후에 거기에 맞는 옷을 사는 편이 맞을지 모른다. 그러니 내 핸드백은 무척이나 눈에 띄는 편으로 구두보다 값도 나간다. 이렇게 힘들여 고르고 골라서 산 다음에는 선반에 올려 놓고 한참이나 구경하기도 한다. 아무튼 나의 인생에 대한 정열의 증거이니 선택에 열을 올리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 시오노 나나미의 "남자들에게" 중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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