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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가볼거리.한국

단종임금이 잠들어 있는 곳 - 영월 장릉 -

 벌써 2013년의 5월도 떠나갈려고 합니다. 지난달 4월에 강원도 영월의 단종 문화제를 다녀왔는데요. 문화제 이야기는 다음에 하고, 단종임금이 잠들어 있는 장릉에 다녀온 이야기를 할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왕과 왕자들 중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그 중 가장 애절한 사연으로 뽑자면 역시 단종 임금이실 겁니다.  단종은 1441년 8월 9일에 태어나 1457년 11월 7일에 돌아가셨는데요. 만으로 16살이었습니다. 재위기간은 1452년 1455년까지로 딱 3년간이지요. 조선왕조 최고의 성군으로 유명하신 세종대왕이 할아버지이고, 세종대왕 후, 아버지 문종 사후에 임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어린 나이에 또한, 조선왕조 최고의 성군이었던 할아버지 세종의 신하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의 집권으로 인해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는데요. 그 후 단종 복위 계획등이 드러나면서 결국 세조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단종의 죽음에 대해서는 몇몇 의견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로 자살했다는 설과, 사약을 받았다고 하기도 하고, 교살당했다고도 합니다. 단종이 죽자 아무도 그 시신을 수습하지 않았는데, 영월군의 엄홍도라는 사람이 눈보라 속에서 사슴한마리가 앉았다 사라진 곳에 시신을 수습하여 가매장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224년이 흘러 숙종때에 다시 대군의 칭호로 복권되고, 그 후 단종으로 복위되었다고 합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비극을 경험한 왕이라 그런지 그 후 민간 무속 신앙에서는 신으로 숭배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조선왕의 능은 도성 4대문에서 걸어서 하루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 80리안에 그 위치해야한다고 법으로 명시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혹시라도 왕이 선조들의 능에 제사를 지내러 갔다가 변란이라도 발생하면 즉각 귀환해야하기 때문이라는데요. 단종의 능인 장릉과 사도세자와 정조의 능이 이 도성 4대문으로 부터 80리밖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사도세자와 정조는 지금의 수원이라 88리정도 였던 모양인데요. 단종만 아주 멀리 강원도 영월군에 묻혔습니다.

다음 지도의 위성뷰에서 본 장릉의 사진입니다. 실제로 방문해보니 영월군에서 꽤 관리를 잘 해서인지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있었습니다.

장릉의 유래를 적어놓은 비석을 지나가면 단종역사관이 있는 장릉으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멀리서 본 장릉입니다. 지금은 정돈해서 그런데 어르신들의 말로는 무덤 뒤에 병풍처럼 둘러친 소나무들이 마치 무덤을 덮어주는 형상으로 자란다고 합니다.

저기 누웠을 단종임금님은 그 어린 나이에 당한 비극적인 삶의 무게를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장릉에서 아래를 바라본 모습입니다.

한자 정(丁)자를 닮았다고 해서 정자각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아래에서 장릉으로 오르는 길이구요

배식단이라고 해서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신하들을 위한 재단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조때에 건립된 단종임금님의 제를 올리는 정자각이 있습니다.

또한 단종비각이 있구요.

또한 정조때 건립된 충신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장판옥이 있습니다.

단종문화제때 제가 갔었기 때문에 저런 대왕선령굿도 구경해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능을 지키는 능참봉과 그 수호군들이 기거하던 재실도 있습니다.

이렇게 몇건의 재건축이 있긴 했지만, 임금의 능과 그 능을 지키는 부속건물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지자체의 노력에도 한편 좋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그러면서 또한 어린 나이에 비명으로 세상을 떠난 어린 임금 단종을 잠시나마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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