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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감상하기

플란다스의 개 - 어린 마음에 꾸었던 부질없는 복수심 -

예전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그의 절망과 자살'이라는 글을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 제가 10대일때 읽었던 책들 중에서 정말 성격이 바뀔 만큼 깊은 느낌을 받은 책이 있다고 하며


접시꽃 당신

플란다스의 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데미안

은하영웅전설


이라고 했었습니다. 그중에서 접시꽃 당신[관련글]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관련글]은 이야기를 했네요. 갑자기 오늘은 플란다스의 개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 하고 싶어지네요^^ 사실 플란다스의 개 (A Dog of Flanders)... 는 위더(Ouida)의 1872년 소설입니다. 내용상 동화로 보기는 좀 어렵죠?^^ 그러나 저는 이 책 내용보다는 쿠로다 요시오 감독의 일본 TV 애니메이션중에서  KBS1TV가 1981년부터 1982년에 걸쳐 방영한 것을 제일 먼저 보았는데요. 워낙 어린 나이라 전체 스토리도 가물거리고, 결정적으로 엔딩이 기억나질 않는겁니다. 그것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동화로 각색된 것이 아닌) 소설을 책으로 10대 중반에 읽게 됩니다. 

추운 겨울 이불 속에 몸을 감싸고, 궁금해하던 결말까지 다 읽고난 다음... 머리위까지 이불을 쓰고 조용히 울었던 기억이 나는 군요... 그렇게해서 플란다스의 개라는 소설을 지금까지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플란다스의 개의 줄거리를 읽고 가죠... 출처는 위키백과입니다.


플란다스의 개 (줄거리)

고아인 네로는 벨기에의 프란다스(플랑드르) 지방 안트베르펀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그의 할아버지 다스와 함께 살고 있다. 둘은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개 파트라슈를 발견하여 키우게 된다. 네로와 파트라슈는 우유수레를 끌며 우유를 팔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네로는 화가의 꿈을 가지고 있으며, 친구 아로아의 초상화를 그려준다. 부유한 곡물상인 아로아의 아버지는 딸이 가난한 네로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네로의 할아버지가 죽고 네로가 그림 경연대회에 출품한 그림마저 잘 안된다. 설상가상 화재범의 누명이 문제가 되어 네로와 파트라슈는 지역유지인 아로아의 아버지에 의해 마을에서 쫓겨난다. 어느 추운 겨울날 네로는 보고 싶어 했지만 돈이 없어서 볼 수 없었던 안트베르펜 성당에 있는 루벤스의 그림을 우연히 볼 수 있게 된다. 다음날 사람들은 교회의 그림 앞에서 죽어있는 네로와 파트라슈를 발견한다. 

- 출처 : 위키백과 플란다스의 개 -



쿠로다 요시오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中 에서


애니메이션에서의 네로와 아로아와 파트라슈입니다. 우유배달하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네로는 그림그리는 것을 아주 좋아하죠.



쿠로다 요시오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中 에서


그런 네로의 둘도 없는 친구 아로아입니다.


쿠로다 요시오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中 에서


할아버지 다스이구요. 저렇게 셋이서 평생을 함께 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마을의 단 하나뿐인 풍차에 화재가 나는데요. 그 누명을 네로가 뒤집어쓰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네로를 믿어주지 않을때,  유일한 가족 할아버지가 쓰러져서 돌아가시게 되죠. 방화범으로 몰린 네로의 우유를 또한 마을 사람들이 사주질 않게 됩니다.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돈도 없는 네로... 


그런 네로..


그러다가 아로아의 아버지의 돈을 줍게 되는데요. 네로는 그걸 고스란히 아로아의 아버지에게 돌려줍니다. 그러나, 돈을 돌려받는 순간에도 차갑게 네로를 대하는 ....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네로의 마지막 희망은 성당에 있는 그림... 그렇게 보고 싶었던 그림을 보는 겁니다. 간신히 성당에까지 도착하고, 끝까지 네로를 지키는 파트라슈와 그림밑에서 지쳐 누운 네로...


다음날... 마을 사람들은 싸늘히 죽은 네로와 파트라슈를 발견하지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네로가 죽고난 다음 방화범이 아니라고 밝혀지면 뭐하나... 마을사람들이 네로가 안되었다고 안타까워해주면 뭐하나... 마을을 떠나라고,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마저 잃고 한 푼 돈도 없는 겨우 우유파는 소년을 몰아세운것을 죽고나서 잠시 슬퍼해주면 뭐하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날 밤 저는 복수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네로를 험담한 한스아저씨, 네로가 돈을 찾아주었을때, 그 추운 겨울밤 따뜻한 밥한끼 나눠주지 않은 아로아의 아버지, 네로의 우유를 더이상 사주지 않겠다고 이야기한 마을 사람들 한명한명... 찾아가서 제가 복수해주는 꿈이었어요... 그런데 그 꿈의 끝은... 소설의 끝처럼 네로는 그냥 죽어있었습니다... 잠시 부질없는 복수를 꿈꾸었던 거지요.


그 생각이 나중에 이상하게 발전해서... 학창시절 특별한 이유없이 특정 아이를 다른 아이들이 험담하거나,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면, 그냥 그 자리를 피하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본 것이나 본인 직접 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냥 그 순간만 듣는 척하고 마음엔 담아두지 않는 버릇도 생겼구요... 더 나아가, 사람이 사람에게 내리는 사형이라는 제도가 불합리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아.. 혹시 오해하실까바... 장난삼아 놀리기라든지.. 가끔 분위기파악못하고 계속 놀리기라든지... 그 순간에는 화가나서 심하게 말하곤 후회하기라든지.. 뭐 이런건.. 저도 항상하는 겁니다. ㅠㅠ)


예전에 이야기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에서는 자살하는 사람을 무조건 매도하지 말고, 육신이 가진 불치의 병처럼 정신도 불치의 병이 들 수 있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할 수도 있으니, 그가 자살한 상황을 또한 살펴보아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고 10대때 느꼈다면,


플란다스의 개...라는 작품을 통해서... 단순한 잘못을 비판하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공격하고 매도하는 것이 슬픈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10대의 저에게 다가와준 이 작품이 그래서 아주 고맙지요...


만약 네로와 아로아와 파트라슈가 살아있다면... 저와 같은 모습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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